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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생애 세종대왕업적 세종대왕발명품

떠나는 여행자 2022. 10. 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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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세종대왕

 

조선의 제4대 국왕이며 묘호는 세종, 시호는 장헌영문예무인성명효대왕, 본명은 이도, 자는 원정, 아명은 막동이었습니다.

 

세종은 조선이 건국된 해인 1392년에서 5년이 지난 1397년에 태어나 조선시대에 태어난 첫 임금입니다.

 

세종대왕

세종은 32년의 재위 치세 동안 수많은 치적을 남겨 조선은 물론 한국사를 대표하는 최고의 성군으로 칭송받습니다. 세종이 창제한 한글은 현대의 대한민국/ 북한의 공용문자로 지정되어 통용되고 있으며 세종 시대에 확립된 북방의 국경은 그대로 한반도 이북 지역의 국경으로 자리잡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세종의 치세는 현대 한국인의 문화와 생활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순신과 함깨 한국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세종대왕의 생애

 

세종대왕생애

 

세종대왕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만 전념한데다 20대 초반부터 왕위에 올라 열정적으로 국정을 돌보았고 육식을 즐겨하는데다 특별히 몸을 쓰는 사냥 등을 즐겨하지 않았으므로 익히 알려진 대로 비만에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습니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몹시 악화되었고 재위 후반기들어 각종 질병에 자주 시달려서 병석에 누워 정무를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이러한 질병으로 재위 24년(1442녀)부터 세자 향에게 국정을 대리청정케 하였습니다.

 

세종대왕생애

 

국정에 물러난 세종은 이 시기부터 좋은 온청에 들러 요양을 하고 유명 사찰을 찾아 먼저 떠난 자식들의 명복을 비는 불사를 일츠켰는데 훈미정음 창제가 이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세종대왕업적

 

제위 25년(1443년) 세종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백성들이 당시의 문자인 한자를 쉽게 배우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친히 28개 글자를 창제하였습니다.

 

세종대왕업적

 

재위 26년(1444년)과 27년(1445년) 5남 광평대군과 7남 평원대군이 연달아 세상을 뜨더니, 재위 28년(1446년) 왕비 소헌왕후마저 먼저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연이은 가족들의 사망 이후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자기 삶이 얼마 남지 않음을 감지하고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세손의 앞날을 부탁하였습니다.

 

세종대왕업적

 

재위 32년(1450년)음력 2월 17일 영응대군 집 동별궁에서 향년 52세에 승하하였습니다. 능호는 영릉입니다.

 

 

 

 

세종대왕업적

 

[출처]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세종대왕의 발명품

 

세종대왕발명품

 

[출처] 그림으로 보는 한국사

 

혼천의 - 1433년

 

세종대왕발명품

 

 간의 발명 1년 후 여러 과학자들과 함께 간의를 더욱 발전시킨 관측기구인 혼천의를 만들어 냈습니다. 간의에 이어 혼천의까지 조선의 기본적인 천문 관측기구인 것이다. 중국에서 사용하던 혼천의는 천체운행을 관측하는 것이 큰 목적이었던 것에 비해  장영실이 제작한 혼천의는 정교한 동력장치를 이용해 천체운영을 운행을 재현하면서 그와 동시에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로 조금은 특별했습니다.

​천체의 운행과 위치 그리고 적도 좌표를 관찰하는데 쓰이던 천체 관측기구로서 혼의 또는 선기옥형이라고 부릅니다.
지평권·적도권·자오권으로 이루어진 육합의와 그 속에 사유의가 설치된 기구로서, 천체의 적경과 극거리를 측정할 수 있었습니다. 

1432년 세종대왕의 명에 의하여 정인지, 정초 등이 고전에 의거하여 제작에 착수하였고 1433년 장영실, 이천에 의하여 완성되었습니다.

 

자격루 - 1434년

 

세종대왕발명품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 세종의 명으로 제작한 이 자동시보장치 물시계는 중국과 아라비아의 자동물시계를 비교, 연구하여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를 만든 것입니다. 시간에 따라 종과 징, 북이 저절로 울리게 만들었고, 인형이 시간을 알려주는 표를 들고 나타나게 되어있는 정교한 자동 물시계였습니다.

자격루는 물시계이면서 정교한 기계장치를 결합 동물인형과 북ㆍ종 등 시각적ㆍ청각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자동 시보장치입니다. 자격루의 작동원리는 물시계에서 생기는 부력을 이용, 구동장치를 작동시켜 인형을 움직여 시간을 알리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저절로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부착ㆍ제작하였습니다.

이 자격루는 1536년 개량되었으나 지금은 복잡한 자동시보장치가 없어지고 3개의 파수호와 2개의 수수통만 남아 덕수궁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앙부일구 - 1434년

 

 

세종대왕발명품

 

1434년(세종16년)에 만들어진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하늘을 바라보는 가마솥 해시계라는 뜻으로,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하고 독특한 발명품입니다.

햇빛에 의해 그림자가 생겼을 때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써 수영면이 오목한 반구형이 특징입니다.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영침이 남쪽 밑에서 북극으로 솟아올라 중앙에 도달하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또한 시각은 12지신으로 표시하여 백성들이 쉽게 시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앙부일구는 시각과 계절을 읽을 수 있는 모든 내용이 수록된 몸체와 이를 받치고 있는 4개의 다리, 열십자 모양의 수평기로 구성돼 있습니다. 앙부일구에서 시각을 해독하는 방법은 햇빛으로 인해 생기는 바늘의 그림자가 닿는 곳을 읽는 것입니다.

글 모르는 백성을 위하여 12 동물로 시각을 그려 놓은 앙부일구를 제작 설치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시계였다는데 그 의의가 큽니다.

수표 - 1441년

 

세종대왕발명품

 

강우량을 측정하는 데는 측우기를 사용하는 방법 이외에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비가 오면 하천의 수위가 올라가고, 가물면 하천의 수위가 내려간다는 자연현상에 주목한 방법입니다.

 

1441년(세종23년)에청계천과 한강에 수표를 제작하여 설치하였습니다. 받침돌과 나무 기둥은 쇠갈고리[鐵鉤]로 묶어 고정시키고, 나무 기둥에 척·촌·분의 수를 새겨 호조의 낭청으로 하여금 하천의 수위를 측정하여 보고하도록 하였습니다.

1441년(세종23년)에서1442년에 걸쳐 제작, 서울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한 하천 수위 측정계이며, 세계 최초로 하천의 수심을 재는 양수위계(量水位計)로 전해집니다.

세종대의 처음 수표는 나무 기둥에 자, 치, 푼의 길이를 표시하고 돌기둥 사이에 묶어 하천에 세운 반목재였으나 그 후 석재로 개량하였습니다. 수표는 강우량에 따른 하천의 수심을 측정, 농업국으로서 가뭄과 물난리로 인한 농업생산의 부진과

국고수입의 격감에서 오는 경제적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측우기 - 1442년

 

세종대왕발명품

 

1441년(세종23년) 8월에 호조에서 측우기 설치를 건의하여 다음해 5월에 측우에 관한 제도를 새로 제정하고 측우기를 만들었습니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으며,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각 도의 군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 관측 및 보고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측우기는 안지름이 주척(周尺)으로 7인치(14.7cm), 높이 약 1.5척의 원통으로 규격을 통일, 전국의 고을에 보내 강우량 측정에 활용했습니다. 측우기의 윗부분, 즉 빗물을 받는 일구의 면적은 바람 등의 역학적 영향 외에 빗방울이 무질서하게 떨어질 때 강우량의 측정오차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조선 세종 때의 측우기가 과학사상 뜻깊은 것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유럽에서는 1639년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B.가스텔리가 처음으로 측우기로 강우량을 관측하였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1442년 5월부터 측우기로 우량을 측정하였으며, 이것은 이탈리아보다도 약 200년이 빠릅니다.

[출처] 장영실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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